행정복지센터 문화강좌에서 '실용인문학' 5강과 6강을 맡게 됐다. 주제는 「행복한 일상을 위한 AI 활용법」, 부제는 “AI는 나의 인생을 어떻게 바꾸어갈까?”. 수강생은 AI도 스마트폰도 익숙하지 않은 초보자분들이고, 여성분들이 많으며, 평일 오후 2시 강의다.

26년 동안 코드를 짜 왔지만 이런 강의안은 또 다른 일이다. 이번에는 강의안을 만드는 과정 자체를 Claude와 함께 했다. AI 활용법을 가르칠 강의를 AI와 같이 만든 셈이다. 그 과정을 기록해 둔다.

1. 출발점: 친목모임용 여행 강의

맨손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다. 예전에 친목모임에서 했던 **90분짜리 「AI 여행강의」 PPT(17장)**가 있었다. 여행 계획을 AI로 짜 보는 내용이라 초보자 눈높이에는 이미 맞춰져 있었다.

문제는 목차였다. 센터에서 받은 강의 주제는 여섯 가지였다.

  1. AI로 국내외 여행계획 만들기
  2. 여행지 정보 검색
  3. 여행 경비 계획
  4. 건강관리 외 정보 활용
  5. 이미지 생성 체험
  6. AI로 추억 앨범 만들기

기존 강의안을 이 목차에 맞게 뜯어고치는 게 첫 작업이었다.

2. 목차 개편 — 버릴 것과 살릴 것

처음엔 100분 기준으로 재구성했다. 결정한 것들은 이렇다.

  • 구글 렌즈 파트: 원래 '보너스' 코너였는데, 새 목차의 '여행지 정보 검색'으로 정식 승격. 대신 짧게 축약.
  • 여행 경비 계획: 완전히 새로 만들었다. "가족 4명, 예산 80만 원"으로 계획을 받은 뒤, "숙소 바꾸면 얼마 아껴?", "렌터카 추가해서 다시 계산해 줘"처럼 이어서 묻기를 보여 주는 시연으로 구성.
  • 여행계획 예시: 건강이나 살림 예시로 바꿀까 고민했지만 그대로 유지. 여행은 누구나 설레는 주제라 첫 실습으로 이만한 게 없다.
  • 이미지 생성: ChatGPT로 통일.
  • 안전수칙: 10분을 따로 확보.

그러다 강의 시간이 늘었다. 1교시 60분, 휴식 10분, 2교시 60분. 시간 배분을 다시 했고, 슬라이드에서 “130분”이라는 합산 숫자는 전부 뺐다. 수강생 입장에서 “130분”은 부담스러운 숫자다. “1교시, 2교시”라고 하면 학교 수업처럼 편하게 느껴진다. 작은 차이지만 이런 표현 하나가 초보자 강의에서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3. "실용인문학인데, 인문학은 어디 있지?"

목차를 다 맞추고 보니 걸리는 게 있었다. 이건 사실상 AI 앱 사용 튜토리얼이었다. 강좌 이름이 '실용인문학'인데 인문학이 없었다.

그래서 각 파트에 인문학적 질문을 짝지어 봤다.

파트 함께 던질 질문
여행 계획·정보·경비 AI가 계획을 다 짜 준다면, 여행에서 '나'는 무엇을 할까?
건강 정보 정보는 AI가 주지만, 그걸로 무엇을 할지는 누가 정하는가?
이미지 생성 그림은 AI가 그려도, 무엇을 그릴지 떠올리는 마음은 누구의 것인가?
추억 앨범 우리는 왜 기록하는가?
안전수칙 편리함과 지혜로운 경계심 사이

그리고 부제 “AI는 나의 인생을 어떻게 바꾸어갈까?”를 도입에서 던지고 마무리에서 다시 회수하는 구조로 강의 전체를 꿰었다.

4. 인문학 슬라이드를 넣었다가, 다시 뺐다

처음에는 발표자 노트에만 성찰 멘트를 넣었다. 그런데 그걸로는 약했다. 그래서 1교시와 2교시 끝에 '인문학 나눔' 슬라이드를 하나씩 실제로 추가했다. 짧은 성찰 문구와 함께 수강생과 나눌 질문 두 개씩.

그런데 완성본을 다시 보니 이게 어색했다. 신나게 실습하다가 갑자기 철학 페이지가 튀어나온다. 수강생 입장에서는 "어? 갑자기 웬 철학?" 하는 느낌이 들 수 있다.

결국 방향을 바꿨다. 인문학을 따로 떼지 않고 강의 흐름 안에 녹이기로. 여행 계획을 시연하면서 "예전엔 정보를 가진 사람만 좋은 여행을 했지만 이제는 누구나 물어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건강 정보를 다루면서 "최종 판단은 나와 의료진"이라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얹는 식이다. 그러면 마지막 질문이 따로 노는 게 아니라 그날 강의 전체의 결론이 된다.

이 대목에서 Claude에게 **”30년 경력의 인문학자 관점에서 검토해 달라"**고 역할을 줬던 게 꽤 효과가 있었다. 건강 정보 슬라이드가 불안을 자극하는 부정형 문장 위주라는 점, 이미지 생성 파트가 순전히 기술 설명뿐이라는 점, 추억 앨범이 '의미'보다 '편리함'만 강조한다는 점 같은 걸 짚어 줬다. 개발자인 나는 놓치기 쉬운 부분들이었다.

5. 실습 방식도 현실에 맞게 바꿨다

추억 앨범 만들기는 원래 “AI가 써 준 사진 설명을 복사해서 다른 앱에 붙여 넣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초보자에게 앱을 오가며 복붙하는 건 생각보다 큰 장벽이다. 실습 시간 대부분이 복붙에 소모될 게 뻔했다.

그래서 ChatGPT에 사진을 주고 “A4 한 장짜리 PDF로 만들어 줘”라고 바로 요청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다운로드해서 바로 인쇄할 수 있다. 결과물이 손에 남는다는 게 초보자 강의에선 정말 중요하다.

보이스피싱 예방 문구도 손봤다. "자녀에게 다른 번호로 전화해 확인하세요"에서 **”가족끼리 암호를 미리 정해 두세요"**로. AI가 목소리까지 흉내 내는 시대에는 이쪽이 더 현실적이다.

6. 강의계획서 — 한글 표에 들어갈 분량으로

센터에 제출할 강의계획서도 필요했다. PPT 내용을 기반으로 강의목표·강의개요·주요내용을 정리했는데, 이건 결국 한글(HWP) 양식의 표 칸에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목표와 개요는 각각 두 줄 분량으로 줄이고, 주요내용은 표가 아니라 텍스트로 받았다. 처음엔 교시별 시간까지 들어갔는데, 시간 → 교시 구분 → 요약 순서로 하나씩 걷어 내서 최종적으로는 주제명과 한 줄 설명만 남겼다. 그대로 복사해서 붙일 수 있게 텍스트로 받은 건 덤.

7. 발표자 노트와 TTS로 리허설

마지막은 리허설 준비였다.

  • 발표자 노트 전문을 Word로 정리했다. 21장 슬라이드마다 실제로 할 말을 다 적었고, 새로 들어간 인문학 멘트는 따로 표시해 뒀다.
  • 같은 내용을 TTS용 텍스트 스크립트로도 뽑았다.
  • 그 스크립트를 브라우저 음성 기능으로 읽어 주는 간단한 플레이어를 만들어, 도입·1교시·2교시를 구간별로 듣고 재생 속도도 조절할 수 있게 했다.

운전하거나 작업하면서 내 강의를 귀로 들어 보니 어색한 문장이 바로 걸러졌다. 눈으로 읽을 때는 몰랐던 부분들이다.

돌아보며

이번 작업에서 느낀 건 세 가지다.

첫째, AI는 초안보다 '수정'에서 빛난다. 목차가 바뀌고, 시간이 늘고, 방향이 바뀔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만들 필요가 없었다. "이건 빼고, 이건 이렇게"를 몇 번이고 주고받으며 다듬었다.

둘째, 결정은 결국 내가 했다. 인문학 슬라이드를 넣을지 뺄지, 복붙 실습을 PDF로 바꿀지, “130분”이라는 표현을 쓸지 말지. 이런 판단은 수강생 얼굴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다.

셋째, 그게 바로 이 강의의 메시지였다. 강의 스크립트의 핵심 문장이 이거다.

AI는 준비를 돕고, 선택과 경험은 우리 몫입니다.

강의안을 만드는 과정이 강의 내용 그 자체였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