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글만 쓰다 보니 블로그가 좀 딱딱해졌다. 오늘은 말랑한 이야기를 하나 해보려 한다. 어느 날 하루, 코드는 한 줄도 안 짜고 명함만 만든 날의 기록이다.

도구는 AI였다. 디자인 앱을 AI 에이전트(Claude Code)로 조작해서 명함을 만들었다. 작업 폴더에 남은 파일 타임스탬프를 보면 18시 13분에 첫 시안이 나왔고, 18시 52분에 인쇄용 파일까지 정리됐다.

1. 명함: 일단 앞면 한 장부터

계기는 단순했다. 서비스 이름이 정해졌으니(AIvance, "AI로 업무를 앞서다") 명함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요청은 이 정도였다. 이름과 슬로건, 연락처가 들어간 앞뒤 두 면짜리 명함. 로고는 따로 없으니 점과 선으로 상승 그래프 느낌만 내달라고 했다.

명함 앞면 v1

첫 시안은 남색 바탕에 파랑·보라 점이 이어진 심플한 로고, 그리고 "AI로 업무를 앞서다" 한 줄이었다. 나쁘지 않았는데, 보고 있으니 너무 얌전했다. 슬로건만 있고 사람이 없는 명함이라 받는 쪽에서 "그래서 누구?"가 되기 쉽다.

명함 뒷면 v1

뒷면 첫 시안은 흰 바탕에 이름·직함·연락처를 정석대로 놓은 형태였다. 깔끔하지만 앞면과 분위기가 따로 놀았다. 한쪽은 어둡고 한쪽은 하얗다.

2. 두 번째 시안: 그라데이션과 그래프

그래서 뒷면을 다시 만들었다. 푸른색에서 보라색으로 번지는 그라데이션 위에 우상향 꺾은선을 얹고, 이름은 크게, 직함과 연락처는 작게 정리했다. 앞면의 점-선 로고가 뒷면에서는 배경 선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명함 뒷면 v2

같은 지시를 한 번 더 했을 뿐인데 결과물의 결이 꽤 달라졌다. 이 단계에서 느낀 건, AI에게 디자인을 시킬 때는 "예쁘게"보다 "무엇과 무엇이 이어지게" 처럼 구조를 말해주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앞면 로고와 뒷면 배경 선이 서로 호응하게 하라는 한 줄이 시안의 완성도를 가장 크게 바꿨다.

3. 인쇄용 파일까지

화면에서 예쁜 것과 인쇄소에 넘길 수 있는 것은 다른 문제다. 폴더를 보면 같은 명함이 이렇게 갈라져 있다.

  • aivance-card-print.pdf → aivance-card-print-final.pdf: 인쇄용 PDF (첫 버전은 용량이 약 10KB, 최종본은 약 2MB — 이미지가 제대로 들어갔다는 뜻이다)
  • aivance-card.ai, aivance-card-bizhows.ai: 일러스트레이터 형식
  • aivance-card-bizhows_Front.eps, _Back.eps: 인쇄소 업로드용 EPS

인쇄 규격에 맞춰 파일을 여러 번 다시 뽑았다. 파일 크기는 의외로 좋은 검증 수단이다. 눈으로 열기 전에 숫자부터 의심해볼 만하다.

4. 하루를 마치며

배운 점은 세 가지다.

  1. 첫 결과가 별로여도 괜찮다. "한 번 더"가 사람 손으로 하는 것보다 훨씬 싸다.
  2. 원하는 느낌은 구조나 비유로 말하자. "예쁘게"는 소용이 없었고, "앞뒤가 이어지게"가 먹혔다.
  3. 파일 크기, 해상도 같은 숫자는 거짓말을 안 한다.

사실 가장 좋았던 건 결과물보다 일의 결이 달랐다는 점이다. 개발할 때는 테스트가 초록불이 되면 끝이지만, 디자인은 끝이 없어서 "이 정도면 됐다"를 스스로 정해야 한다. 그 감각이 오랜만에 새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