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요일
미단재

끄적임 일곱 대의 차, 나의 자동차 변천기

작성자 웅파 작성일 2026-10-24 10:56:51 조회수 12

얼마 전 지금 타는 차의 계기판이 10만km를 넘겼다. 숫자가 바뀌는 걸 보고 있자니 문득 지금까지 거쳐 간 차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돌아보니 차마다 그 시절의 내가 있었다. 기억이 더 흐려지기 전에 적어두려 한다.

1. 기아 캐피탈: 공짜로 얻은 첫 차

첫 차는 기아 캐피탈이었다. 회사 부장님 지인분이 안 탄다고 하셔서 공짜로 가져왔다. 공짜 차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에어컨이 고장 나 있었다. 1997년 당시 수리비가 80만 원이라고 했다. 그 시절 80만 원이면 차값보다 비쌀 수도 있는 돈이라 깔끔하게 포기하고 그냥 탔다. 여름엔 창문을 열고 달리는 게 에어컨이었다.

더 난감한 건 후진이었다. 후진 기어가 자꾸 찐빠가 나서 언덕에서는 후진이 안 됐다. 그래서 주차할 때마다 지형부터 살폈다. 내리막을 등지고 세우면 안 된다는 걸 몸으로 배운 차다. 그래도 내 이름으로 굴러가는 첫 차였고, 그것만으로 충분히 설렜다.

2. 기아 프라이드 1세대: 에어컨이 나온다는 행복

두 번째 차는 프라이드 1세대. 이 차에는 안테나 버튼이 있었다. 누르면 안테나가 위잉 올라가고, 다시 누르면 내려갔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닌데 그땐 그게 꽤 신기했다. 창문은 물론 손으로 돌리는 수동이었다.

대신 캐피탈에 없던 두 가지가 있었다. 에어컨이 시원하게 잘 나왔고, 후진이 잘 됐다. 언덕에서 마음 놓고 후진할 수 있다는 게 이렇게 감사한 일인 줄 처음 알았다. 이 차는 나중에 처남에게 넘겨줬다.

3. 엘란트라 1.6: 돈 먹는 하마, 그래도 정든 차

세 번째는 엘란트라 1.6. 아무 생각 없이 어머니 지인분이 하시는 매매상에 갔다가 덜컥 사 온 차다. 그 "아무 생각 없이"의 대가는 컸다.

수리비만 500만 원 넘게 들어갔다. 미션을 두 번 교체했고, 전기 계통만 빼고 거의 모든 부분을 한 번씩 손댔다. 정비소 사장님과 친해질 정도였다.

그런데도 이 차를 쉽게 놓지 못했다. 엘란트라 동호회에 가입해서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같은 차를 탄다는 이유 하나로 모여서 고장 얘기, 정비 노하우, 사는 얘기를 나눴다. 수리비가 들어가도 유지했던 건, 차보다 그 차로 이어진 사람들 덕분이었던 것 같다.

4·5. EF 쏘나타: 편안함, 그리고 캠핑의 시작

네 번째와 다섯 번째는 연달아 EF 쏘나타였다. 한 번 타보고 다시 고를 만큼 정말 편하게 탈 수 있는 차였다. 앞선 차들과 씨름하던 시절을 지나 처음으로 "차가 나를 편하게 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User image

이 무렵부터 캠핑을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엔 트렁크만 채웠는데 금세 모자랐다. 뒷좌석 반을 짐으로 채우고, 그래도 모자라서 나중엔 지붕에 루프백까지 얹고 다녔다. 세단 한 대에 캠핑 살림을 테트리스처럼 쌓던 기억이 난다. 승용차의 한계를 몸으로 느끼면서 다음 차의 방향이 정해졌다.

6. 코란도 스포츠: 캠핑에 진심이던 시절

여섯 번째는 코란도 스포츠. 캠핑에 진심이던 때였다.

처음엔 하드탑으로 출고했다. 그런데 루프탑 텐트를 올리고 싶어서 평면탑으로 바꾸고 구조변경까지 했다. 그렇게 루프탑 텐트를 얹은 코란도 스포츠가 완성됐다.

루프탑

한 달에 두세 번씩 캠핑을 다녔다. 캠핑 짐은 늘 차에 실려 있었다. 금요일 퇴근길에 마음만 먹으면 그대로 출발할 수 있었다. 여름뿐 아니라 동계 캠핑도 많이 다녔다. 차가 곧 움직이는 베이스캠프였던 시절이다. 지금 돌아봐도 가장 자유로웠던 시기 중 하나다.

7. 르노 QM5: 13년째, 그리고 10만km

아들이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캠핑을 안 다니게 됐다. 루프탑 텐트를 이고 다닐 일이 없어지자 코란도 스포츠를 정리하고 르노 QM5로 대차했다. 차박용으로 처음엔 사용, 순정 차박텐트로 1년정도 캠핑 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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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도 안 된, 6,000km 주행한 중고차였다. 가솔린이라 힘은 좀 딸린다. 대신 조용하다. 주행거리가 길지 않은 우리 가족에게는 딱 맞는 차였다.

그렇게 가져온 차를 13년째 타고 있다. 이제 막 10만km를 넘겼다. 1년에 1만km도 안 탄 셈이다. 지금까지 거쳐 간 어떤 차보다 오래 함께하고 있다.

마치며

적어놓고 보니 차가 바뀐 순서가 곧 내 삶이 바뀐 순서다.

공짜 차에 감지덕지하던 시절, 수리비를 감수하며 사람을 만나던 시절, 짐을 이고 지고 산으로 들로 다니던 시절, 그리고 아이가 자라 조용한 차가 더 어울리게 된 지금.

QM5는 아직 잘 달린다. 이 차와 몇 km를 더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큰 탈 없이 오래 함께해 줬으면 좋겠다.

댓글 1개

웅파
2026-10-24 11:05

다음 차는 정해진 건 딱하나. AW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