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후 한동안 나의 눈과 맘을 풍요롭게 해주었던 목련꽃이 이젠 옛 추억의 첫사랑처럼
아련히 남아 있다.
베란다를 거닐 때면 어김없이 눈에 들어오는 앙상한 나뭇가지와 파릇한 잎들..
그리고 시멘트 바닥에 쓸쓸히 누워있는 퇴색된 목련 잎들..
이제는 한낮 마당 한켠의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 목련꽃잎들을 보자니 가끔은 서글픈 생각이 든다.
우리네 인생도 저러지 아니할까..
그래도 난 그 길을 간간이 지나면서 저 목련이 나에게는 즐거움이었고, 별 소일거리가 없었던
내게 그나마 위안을 주었었기에 쓸쓸히 퇴색되어버린 지금에서도
난 고마워하고 있다.
내년이 되면 그 탐스럽고 고귀한 자태를 또 볼 수 있으므로..
나두 시간이 지나면서 예전의 그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고, 또 몇년후면 지금의 모습도 아련할 것이다.
지난 사진첩을 들쳐보며 그 통통하고 발랄했던 나를 추억하겠지.
하지만, 나이가 들어 지금의 나를 찾을 수 없을지라도 나는 지금의 내가 고맙다.
한 아가의 엄마가 되기위해 그 힘들었던 시간들이 내게는 꿈이요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
이제 곧 태어날 아가를 위해 난 아직 아무런 준비도 못하고 있지만,
같이 아파하면서 그 긴 시간들을 잘 견디어가고 있기에 더 끈끈한 유대감을 느끼고 있으리라.
내년이면 이맘때쯤 내가 그리 아쉬워하던 목련이 다시 필 것이고,
그때쯤이면 우리 아가도 그 목련을 같이 보고 있을 것이다.
이런 시간들이 아니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나이듦을 서글퍼하는 것이 아니라
성숙된 나를 보며 흐뭇해할 수 있다면 충분히 행복할 수 있겠지.
목련처럼 매년 외적인 아름다움을 또 찾을 수는 없겠지만, 내 맘만은 주름진 외모와는
반비례하면서 더 젊어지고 싱싱해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내 몸속에 이제 내 삶을 풍요롭게 해 줄 꿈나무가 자라고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