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고상 ‘비너스’

아그리파-줄리앙-비너스
몸이 안좋아서 자주 화실을 못가다보니 완성하기까지 시간이 오래걸리기도 했지만, 막막함이 밀려오기도 했던 비너스..
사실은 비너스를 하면서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을까하는 후회도 들었고, 지금의 내가 넘을 수 없는 벽인가 자책도 많이 했다.
보통은 내가 그림과 씨름을 하든 대상과 그림을 번갈아가며 노려보고 있든 sos를 할 때까지 멀리서 묵묵히 기다려주시는 편인데..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마무리를 해야하는 과정에서 참으로 많은 sos를 보냈던 비너스.
내 이름을 써넣기가 한없이 부끄러웠던.. 그래서 이 그림은 쌤의 손길이 많이 들어갔는데 내 이름을 써넣어도 되는 거냐고 난처한 질문도 하고..
그러다보니 한곳만 열심히 파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ㅠ 쌤은 그런 나에게 틈틈이 다른 곳도 하라고 주문을 하시고.. 아마도 나의 안식처 흔들의자를 가장 많이 찾지 않았나 싶다.

엉망으로 그려내도 내 손에 더 많이 의지해야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나에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답답함에 손을 놔버리고 싶었던 그림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난 지금 처음부터 시작하고 배우는 입장으로 겸손해야한다는 것과 부분을 보지말고 전체를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빛의 흐름을 알고 싶었고, 어둠의 흐름도 알고 싶어졌다. 지금까지 묘사를 하는데 중점을 두었다면 전체의 흐름과 조화를 봐야한다는 것을..
그림을 좀 할 줄 알면 세부묘사를 해서 입체감을 내고 완성을 하는 것은 누구든지 연습만 시키면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전체를 보면서 공간을 생각하고 채워줄 곳은 채우고 과감하게 비워야할 곳은 비우면서 주변의 물체와의 조화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생각을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은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쌤의 말이 가슴에 콕 박히는 날이었다.
아마도 그림과 함께한 오랜 시간들로 인해 나를 좀 우쭐하게 생각한 탓이리라.
이 과정들이 지나면 언젠가는 나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때가 곧 올거라고 쌤이 강하게 부드럽게 나의 마음을 위로해주신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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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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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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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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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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