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돈이 좋은 돈을 몰아낸다.












파워레인저 속의 악당 쌍절곤 반기는 세상을 멸망시키기 위해 불사신 론을 불러옵니다. 파워레인저들은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힘을 모아 악당들을 물리치고 세계를 구합니다. 좋은 이들이 나쁜 이들을 몰아낸 것이지요. 이것은 늘 우리가 바라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돈이 움직이는 시장은 좀 다릅니다. 나쁜 돈이 좋은 돈을 몰아내기도 합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라는 그레셤의 법칙이 있습니다. 하나씩 풀어보면 ‘악화’는 가치가 낮은 나쁜 돈이고, ‘양화’는 가치가 높은 좋은 돈입니다. ‘구축’이란 어떤 것을 몰아낸다는 말입니다. 즉 가치가 낮은 나쁜 돈이 가치가 높은 좋은 돈을 몰아낸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16세기 영국의 재무 전문가였던 존 그레셤이 여왕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종이 돈을 쓴 것이 아니라 금이나 은으로 동전을 만들어 썼습니다. 금과 은은 자체로 가치가 있는 금속입니다. 금 1 온스에 얼마, 은 1온스에 얼마라는 가치가 있고 이를 실질가치라고 합니다. 이런 금과 은을 가지고 동전을 만들면 동전 위에 1파운드, 10파운드 등을 써서 표면에 써진 가치가 또 있습니다. 이를 액면가치라고 합니다.
당시 영국에는 은이 부족했습니다. 따라서 은의 실제 가치가 많이 올라갔습니다. 예를 들어 은화를 만들 때 쓴 은의 실제가치는 15파운드인데, 은화 표면에는 10파운드라고 써 있었던 것이지요.그러자 정부는 은화를 만들 때 은을 조금 섞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은화의 액면가치는 10파운드이지만 실제로 이 은화를 녹여서 팔면 10파운드를 못 받았던 것이지요. 사람들은 은의 함량이 높아서 실제가치가 높은 은화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10파운드 은화로 10파운드 어치 물건을 사기보다는 녹여서 15파운드에 은을 파는 것이 더 나았으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실제가치가 높은 좋은 돈은 쓰지 않고, 실제가치가 낮은 나쁜 돈만 쓰게 되었습니다. 나쁜 돈이 좋은 돈을 시장에서 몰아낸 것이지요.
이런 일은 과거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1960년대까지 캐나다와 미국에서는 은화를 사용했습니다. 은화의 액면가치보다 은화의 실질가치가 올라가면서 사람들은 은화를 사용하지 않고 그냥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시장에서는 동전이 부족하게 되었고 결국 더 이상 은화를 만들지 않고 다른 금속으로 동전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도 동전이 부족해서 늘 문제입니다. 물건을 사도 거스름돈으로 동전을 받을 수 없고 껌이나 사탕 같은 것을 대신 가지고 가라고 할 정도입니다. 아르헨티나는 물가가 너무 빨리 오르기 때문에 동전의 액면가치보다 실질가치가 높습니다. 그러니 동전을 녹여 수출하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해 버려서 늘 동전이 부족합니다.
이렇게 나쁜 돈이 좋은 돈을 몰아내기 때문에 현대에서 돌아다니는 돈은 거의 나쁜 돈입니다. 우리 지갑 안에 있는 1천원짜리 지폐의 액면가치는 1천원이지만 실질가치는 1천원보다 훨씬 낮으니까요. 하지만 나쁜 돈 덕분에 시장에는 더 많은 돈이 돌아다니게 되었습니다. 돈이 많이 돌아다니니 경제 규모도 더 커지게 되었습니다. 나쁜 돈은 사실 나쁜 돈이 아닌 셈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