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허리에 차던 삐삐부터 지금 손에 든 갤럭시 S25까지, 따져보니 30년 가까이 매일 뭔가를 들고 다녔다. 기기 하나하나가 그 시절의 나와 묶여 있다. 제대한 청년, 막 입사한 신입, 밤새 롬을 굽던 개발자, 그리고 지금의 나.
오늘은 그 기기들을 순서대로 꺼내본다. 스펙 비교가 아니라, 손에 쥐고 살았던 이야기다.
1. 삐삐, 숫자로 대화하던 시절
군 제대하고 제일 먼저 장만한 게 삐삐였다. 처음엔 삼성 것을 쓰다가 나중에 모토로라로 바꿨다. 허리띠에 차고 다니는 게 일종의 패션이던 때다.

모토로라 삐삐 · 사진 Jakez, CC BY-SA 3.0, 위키미디어 공용
삐삐가 울리면 할 일은 하나였다. 가까운 공중전화를 찾아 동전이나 카드를 넣고 번호를 누르는 것. 공중전화 앞에 줄이 길면 뒷사람 눈치를 보며 짧게 끊어야 했다. 음성사서함에 녹음된 목소리를 들으려고 몇 번씩 전화를 걸던 기억도 난다.
숫자 암호도 빼놓을 수 없다. 8282는 빨리빨리, 1004는 천사, 486은 사랑해. 몇 글자 안 되는 숫자로 마음을 주고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최초의 이모티콘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시티폰은 친구 것으로
시티폰은 내 돈 주고 사진 않았다. 친구들이 들고 다니던 걸 빌려 써봤을 뿐이다. 걸 수만 있고 받을 수는 없는 전화, 그것도 공중전화 부스 근처 기지국 가까이 가야 터지는 전화였다. 신기하긴 했지만 삐삐랑 같이 들고 다녀야 하니 두 개를 챙기는 꼴이었다. 결국 금방 사라졌다.
2. 모토로라 스타택, 배터리 네 개의 무게
회사에 들어가면서 처음으로 진짜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모토로라 스타택! 큰 배터리를 장착하면 주머니에 안들어가던... 가방에 넣거나 손에 들고 다녔다.

문제는 배터리였다. 통화 몇 번 하면 금방 바닥을 드러냈다. 그래서 나는 배터리를 4개씩 가지고 다녔다. 가방 안에서 배터리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출근길 배경음이었다. 하나 다 쓰면 빼서 갈아 끼우고, 퇴근하면 충전기에 줄줄이 꽂아두는 게 하루 마무리였다. 한달 통화료가 그 당시 돈으로 20만원쯤 나왔었다. 번개 나가면 친구들이 나 한 통화만.. 하고 들고 나가서 30분씩 통화를 해댔던... 처음엔 회사에서 통신비 전액지원이었는데 나중엔 5만원만 지원해줌.
그래도 그게 좋았다. 공중전화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 자유 하나로 배터리 네 개의 무게쯤은 아무렇지 않았다.
3. PCS의 등장, 그리고 LG 싸이언
PCS가 처음 나왔을 때 바로 갈아탔다. 손에 쥔 건 LG 싸이언이었다. 벽돌폰을 쓰던 손에는 거짓말처럼 작고 가벼웠다. 드디어 휴대폰이 주머니에 들어가는 시대가 온 것이다.
배터리를 네 개씩 들고 다닐 필요도 없어졌다. 요금도 내려가면서 주변 사람들 손에 하나둘 휴대폰이 들리기 시작했다. 삐삐와 공중전화가 빠르게 밀려나는 걸 실시간으로 지켜본 셈이다.
스타택에 비해 잘 안터지긴 했다.
벨소리를 직접 찍어 넣고, 문자 몇 글자에 요금을 따지던 것도 이때부터다. 휴대폰이 업무 도구에서 생활 도구로 바뀐 순간이었다.
4. 윈도우 모바일, 직접 구워 올린 폰
여기서부터 개발자 본성이 나오기 시작했다. 윈도우 모바일이 올라간 폰을 썼는데, 그냥 쓰지 않았다. 롬을 직접 컴파일해서 올렸다.

필요 없는 건 빼고, 원하는 건 넣고, 빌드해서 플래싱. 부팅 로고가 뜰 때까지 숨죽이고 기다리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 번에 성공하는 날보다 벽돌이 될까 가슴 졸이며 복구하는 날이 더 많았다.
돌이켜보면 폰은 통신기기라기보다 장난감이자 실험실이었다. 스타일러스로 콕콕 찍던 작은 화면 안에 내가 만든 시스템이 돌아간다는 것, 그게 제일 큰 재미였다.
5. 스마트폰 춘추전국시대: 아이폰, HTC, 다시 아이폰
초기 아이폰, 그리고 루팅
아이폰이 나오자 판이 완전히 바뀌었다. 손가락으로 밀고 넘기는 화면은 스타일러스 시절과 차원이 달랐다. 나는 초기 모델을 손에 넣자마자 열심히 루팅부터 했다. 막혀 있는 걸 보면 열어보고 싶은 건 윈도우 모바일 시절부터의 버릇이었다.

HTC 구글폰
다음은 HTC가 만든 구글폰이었다. 안드로이드는 처음부터 열려 있는 세계라 굳이 뚫지 않아도 마음껏 만질 수 있었다. 개발자 입장에서는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블로거토크] 구글 넥서스원 - 전자신문](https://img.etnews.com/photonews/1002/100211042414_1602285646_b.jpg)
아이폰6로 잠시 복귀
그러다 아이폰6로 한 번 돌아갔다. 큰 화면에 다듬어진 완성도, 이것저것 손대지 않아도 그냥 잘 돌아가는 편안함이 있었다. 만지작거리는 재미보다 안정감이 필요한 시기였던 것 같다.
이때는 아이폰, 아이패드, 애플워치로 라인업을 맞춰 사용했었다.

6. 갤럭시에 정착하다: 플립4, 그리고 S25
아이폰6 이후로는 쭉 갤럭시다. 여러 기종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손에 익었고, 이제는 다른 폰을 쥐면 오히려 어색하다.
한동안은 갤럭시 Z 플립4를 썼다. 반으로 접히는 폰을 처음 열었을 때, 어릴 적 폴더폰을 탁 닫던 손맛이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 30년 돌고 돌아 다시 접는 폰이라니, 묘한 재미가 있었다.

딱 2년 지난 시점에 배터리 선 끊어짐. 폰을 접으면 전원이 꺼졌다. 일체형이라 액정까지 다 갈아야했고 어마어마한 비용지불하고 다시는 접는 폰 안쓴다고 마음먹었다.
지금 손에 있는 건 갤럭시 S25다. 이제 폰은 업무 메신저이자 서버 모니터링 도구이고, AI에게 말을 거는 창구이기도 하다. 삐삐 번호 몇 자리로 마음을 전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중간에 갤럭시 노트8, 9, 10까지 사용했다.
마치며
순서대로 적어보니 이렇다.
- 삐삐 (삼성 → 모토로라), 시티폰은 친구 것으로 체험
- 모토로라 벽돌폰 (배터리 4개)
- PCS, LG 싸이언
- 윈도우 모바일 폰 (롬 직접 컴파일)
- 초기 아이폰 (루팅) → HTC 구글폰 → 아이폰6
- 갤럭시 노트8, 9, 10 → 갤럭시 Z 플립4 → 갤럭시 S25
기기는 계속 바뀌었지만 변하지 않은 게 하나 있다. 손에 쥐면 일단 뜯어보고, 바꿔보고, 내 식대로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롬을 굽던 그 손이 지금은 서버를 만지고 서비스를 만든다.
다음 폰은 또 어떤 모습일까. 접히든 펼쳐지든, 아마 나는 또 이것저것 만져보고 있을 것이다.

댓글 2개
글 보니 소니에릭슨 엑스페리아도 사용했네요. 무선이어폰과 블루투스 시계까지.. https://jblove.net/1648
삼성 sph-m4650 도 썼었네. ㅎㅎㅎㅎ https://jblove.net/1552